동백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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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 당시의 LP 표지. |
1. 개요 [편집]
1964년에 발표되었던 트로트 곡으로, 이미자의 대표곡 중 하나.
2. 상세 [편집]
2.1. 가사 [편집]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 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
2.2. 발표 및 경과 [편집]
2.3. 금지곡 지정 및 해금 [편집]
당시 박정희 정권은 돌연 이 곡에 방송금지 조치를 해버렸다.[7] 이유는 일본의 엔카와 비슷하다는 것. 물론, 한국의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와 비슷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전의 다른 가수들의 트로트 곡들은 그때까지 이런 시비를 걸지 않았으면서 유독 이미자의 곡들에 시비를 거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 가사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라고 한다. 무얼 기다리느냐는 것으로, 기다릴 일이 없으면 마음에 멍들 일도 지칠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 아마도 시대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는데, 당시 한일회담의 역작용으로 《동백아가씨》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후로 《섬마을 선생님》[8], 《기러기 아빠》[9], 《유달산아 말해다오》[10] 등, 새로 발표하는 곡들이 왜색 등의 이유로 금지곡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미자 본인은 노래를 그만 둘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 후,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금지곡들이 모두 풀리게 된다.
또 다른 이유로 가사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라고 한다. 무얼 기다리느냐는 것으로, 기다릴 일이 없으면 마음에 멍들 일도 지칠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 아마도 시대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는데, 당시 한일회담의 역작용으로 《동백아가씨》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후로 《섬마을 선생님》[8], 《기러기 아빠》[9], 《유달산아 말해다오》[10] 등, 새로 발표하는 곡들이 왜색 등의 이유로 금지곡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미자 본인은 노래를 그만 둘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 후,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금지곡들이 모두 풀리게 된다.
3. 여담 [편집]
[1] 남쪽 섬마을의 처녀가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과 사랑하여 미혼모가 되고 재회, 이별하는 내용.[2] 본명은 한종명.[3] 본명은 백영효.[4] 당시 이미자는 임신 9개월인 만삭의 몸이었다.[5] 당시에는 3천 장도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6] 이 때에 이미자는 집, 전화, 자동차를 구입할 만큼의 부와 명예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전화는 300만 ~ 500만 원이나 할 정도의 재산목록 1호였다고.[7] 정작 박정희는 이미자를 불러다가 이 노래를 시키거나 혼자 몰래 듣곤 하였다고 한다.[8] 표절시비 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는데, 정작 표절시비에 얽힌 일본 곡이 《섬마을 선생님》 보다 나중에 발표된 곡이었다. 기사 참조 [9] 비관적인 노랫말이라는 이유로[10]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어 2년 후에 전반부를 고쳐서 발표하게 된다. 1967년판 1969년판 [11] 로미나가 그녀의 SNS에 올린 것을 누군가가 유튜브에 올렸는데, 열광적인 반응의 댓글이 올라온 사실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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